🎙️ 오페라 속으로: 베르디의 불꽃, 《일 트로바토레》
🔸 "밤의 음유시인"이 들려주는 격정의 이야기
1853년 1월, 베르디는 《일 트로바토레》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 시기는 그가 이미 《리골레토》(1851)로 대성공을 거두고, 국민 작곡가로 떠오르던 시기였지요.
그렇지만 이 낙품이 세상에 나오기 까지는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습니다.
이작품의 원작은 스페인 극작가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즈(Antonio García Gutiérrez)**의 연극 *El trovador(음유시인)*이었습니다.
베르디는 이 희곡이 가진 격정적이고 불합리한 운명을 다룬 이야기에 매료 되었죠
그는 "작품의 논리적 구조보다, 등장 인물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연기하느냐가 중요하다" 라고 말 할 정도였습니다.
이 작품의 대본을 함께 구성한 살바토레 카마라노는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인어 레오네 에마누엘레 바르다레가 완성했습니다.
무대 위 조명이 천천히 켜지면, 연기는 검게 피어오르고, 한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성벽 위를 메아리칩니다. 그것은 단순한 경계병의 말이 아니라, 불꽃처럼 타오르는 운명의 시작이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는 여러개의 도시국가와 외세에 의해 분열되어 있었고,지식인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자유와 독립, 민족통일을 갈망하던 시기였습니다.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는 단순한 삼각관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복수, 정체성, 계급 간의 갈등, 인간의 운명에 관한 냉철한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사랑, 복수, 오해, 비밀스러운 출생과 같은 오페라의 전형적인 요소를 모두 품고 있으면서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선과 드라마틱한 음악으로 관객을 빠져들게 만듭니다.
음유시인 만리코, 디 루나 백작, 여인 레오노라, 그리고 저주받은 운명을 안고 사는 집시 여인 아주체나. 이 네 인물의 얽히고설킨 운명은 매 장면마다 불꽃처럼 격렬하고, 눈물을 머금게도 합니다.
🎭 작곡가 이야기: 베르디의 "격정 3부작" 중 하나
《일 트로바토레》는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와 함께 베르디의 "중기 3대 걸작" 중 하나로 불립니다. 특히 이 작품은 **"멜로디의 폭풍"**, **"목소리의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아리아와 중창, 합창이 불을 뿜습니다.
베르디는 이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강렬하고 직설적인 감정 표현을 시도하고 있죠. 이탈리아의 낭만주의 정서를 배경으로, 인간의 감정과 운명이라는 주제를 강하게 부각시킨 것이 특징입니다.
🎬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운명의 드라마
제1막: 그림자의 이야기 (La vicenda)
밤, 성벽 위. 경계병 페루칠로가 과거의 전설을 이야기합니다.
“오래전, 백작의 동생이 납치됐습니다. 모두가 말하길… 한 집시 여인이 아이에게 저주를 걸었다고요…”
그 범인으로 지목된 집시 여인이 화형당했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 집시의 딸, **아주체나**, 그녀는 아직도 어머니의 복수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성문이 열리고, 웅장한 분위기 속에 디 루나 백작이 등장합니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 있는 남자.
그의 눈에는 두 가지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실종된 동생에 대한 의심, 또 하나는 귀부인 레오노라에 대한 사랑.
한편 귀부인 **레오노라**는 용맹한 음유시인 **만리코**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밤마다 노래를 부르던 음유시인 만리코...하지만 그의 정체는 미스터리 였죠.
그러나 **디 루나 백작** 역시 레오노라를 연모하며 질투에 불탑니다.
밤의 정원, 오해가 빚어낸 결투. 만리코와 백작은 서로를 향해 칼을 듭니다.
사랑을 둘러싼 대결, 그들의 싸움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합니다.
제2막: 집시의 불길 (Azucena)
집시들의 캠프.
커다란 모닥불이 타오르고, 그 앞에 아주체나가 서 있습니다.
아주체나는 불길 앞에서 어머니가 화형당한 일을 되새깁니다.
그녀의 얼굴엔 깊은 상처와 비통함이 서려있고, 불을 바라보며 노래합니다.
“불꽃이 타오른다… 어머니가 저기서 죽었다… 그 복수는, 나의 생이다…”
아주체나는 만리코에게 어릴적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복수를 위해 백작의 아이를 불에 던졌지.
…아니… 내 아이였던가… 나는… 무엇을 저질렀는가…”
그 아이가 바로 만리코. 그는 복수의 도구였고, 사랑받은 아들이었으며, 이제는 어두운 진실 속에 있습니다.
만리코의 마음은 복잡하지만 그는 그녀를 어머니처럼 사랑했습니다.
제3막: 복수의 성벽 (Il conte di Luna)
무대는 다시 성안의 감옥으로 옮겨집니다.
디 루나 백작은 이주체나를 체포하고, 그녀가 어릴 적 자신의 잃어버린 형제를 죽인 집시라 확신합니다.
“그렇다… 네가 그 여자였군. 네 피로 동생의 복수를 갚겠다!”
한편, 만리코는 레오노라와 함께 도피할 준비를 하죠.
그때 만리코는 어머니처럼 믿고 사랑하는 아주체나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폭풍 속을 향해 나아가듯, 만리코는 다시 검을 들고 성으로 향합니다.
제4막: 죽음과 구원 (Il supplizio)
회색빛 감옥. 만리코는 붙잡혀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레오노라는 그를 구하기 위해 디 루나 백작과 거래하지만, 그의 품에 안기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합니다.
“나는 자유를 택했어요. 이 사랑을 위한 마지막 자유… 제 피로 그를 구하겠습니다.”
독을 마신 레오노라는 감옥을 찾아 만리코에게 마지막 작별은 고합니다.
감옥 안, 레오노라는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만리코는 절규합니다. 그 순간, 디 루나 백작은 만리코를 처형하라고 명령하고,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는 순간 눈을 부릅뜬 아주체나는 외칩니다.
“그가 네 형이다! 너는… 네 형을 죽였어!”...
남은 것은 어둠과 침묵과 탄식뿐.....
💡 비극은 운명의 이름으로
《일 트로바토레》는 그 어떤 해석보다도 감정의 직접적인 폭발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입니다. 배경지식이 없어도, 장면과 음악만으로도 관객은 쉽게 몰입하게 됩니다.
집시의 저주, 오해로 뒤틀린 형제의 비극,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의 폭로까지… 모든 것이 하나로 엮이며, “오페라는 이야기다”라는 진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합니다.
- 대표 아리아 ① “Il balen del suo sorriso” (그녀 미소의 찬란한 빛) – 디 루나 백작이 레오노라를 향한 사랑을 노래하는 곡. 감미롭고 정열적인 바리톤 아리아로 유명합니다.
- 대표 아리아 ② “Stride la vampa” – 아주체나가 어머니가 화형당한 장면을 회상하며 부르는 강렬한 메조소프라노 아리아. 오페라 전체의 어두운 정서를 상징합니다.
- 대표 아리아 ③ “Di quella pira” – 만리코가 아주체나를 구하러 돌진하기 직전 부르는 테너의 절규. 불꽃처럼 타오르는 고음이 압권입니다.
이 세 아리아를 중심으로 감상하면 전체 이야기가 더욱 잘 들어오며, 인물들의 감정선도 공감하기 쉬워집니다. 또한 합창 장면 역시 중세 전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남성 합창이 웅장하게 펼쳐지는 대목도 놓치지 마세요.
🎧 마무리하며
이번 시간은 피맺힌 복수,사랑과 오해, 운명과 현실을 격려히 이야기한 일 트로바토레와 함께 했습니다.
복수란 이름의 또다른 고통,오해로 인한 사람들과의 갈등,때론 엇나간 시간으로 인한 후회, 이 모든 것들은 운명이기 보다 우리들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더 나은 선택으로 더 나은 하루하루가 되길 바라며 오늘의 오페라 나은월드 였습니다.
다음 시간은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 시리즈 제7회 주세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로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